월드뮤직, 누에바 깐씨온, 그리고 우리의 음악에 대한 짧은 단상 (2007.4.1)

 월드뮤직, 누에바 깐씨온, 그리고 우리의 음악에 대한 짧은 단상


2007.4.1 만우절날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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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서남준 지음, 대원사) 257쪽에서


1950년대의 어느날 칠레 북부의 광산 마을을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눈으로 본 광부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그녀는 민요의 형태로 노래했다.


팜파를 향해 떠났을 때

나의 마음은 노래하는 새처럼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서 죽어버렸다

처음엔 날개를 잃었고

마침내 목소리마저 잃어버렸다

태양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불타고 있는데

광부들이 사는 집을 보았을 때

차라리 달팽이 껍질 족이 훨씬

낫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법의 보호 아래

영리한 도둑들이 판을 친다.

태양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불타고 있는데.....



중략


그리고 가는 곳마다 민요의 아름다움과 민속 문화의 풍부함에 놀라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배워 나갔다. 그러면서 그들이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것이 마음 아파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은 평생 가난한 것일까?'라는 소박한 질문을 자신의 언어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 그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 눈물과 축제 및 경우에 따라서는 감옥이나 추방에서 겪는 고통을 노래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로큰롤이 난무하던 1950년대부터 라틴 아메리카 각지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 '새로운 노래' 즉 '누에바 깐시온' 운동이다.

누에바 깐시온 운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싹튼 뒤 점차 그 범위가 넓어져 카리브 해와 라틴 아메리가 전역에 걸쳐 일어났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서 그 양상이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되는 것은 새로운 시점, 새로운 가치관을 담은 가곡이 많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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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뮤직, 제3세계 음악(현재 상황에서는 이 단어가 맞는지는 모르겠다)에 대해서 마음의 관심만 가지고 있다가 처음 접한 것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비디오를 잘 보지 않는데 어떻게해서 비디오를 빌려보고 음반도 사게 되었다. 낯설은 나라 쿠바, 그리고 그 쿠바에서 일상생활을 하다가 다시 노년의 나이에 음악을 만든 사람들, 그들의 음악이 생각보다 낯설지는 않았다. 어쩌면 음악은 처음이어도 차베스가 이끌고 있는 베네주엘라를 포함하여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남미의 상황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국내 주류언론에서는 소개를 잘 하지 않으니 관심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변화를 알기는 힘들겠지만.


  그러고나서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2005년 겨울부터 다시 남미 음악과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라는 라틴아메리카 문화기행에 대한 책과 음반을 사면서부터이다. 남미의 음악과 문화에 대해서 처음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좋은 입문서인 듯 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아타왈파 유팡키, 메르세데스 소사, 안덱스, 콘도르, 빅토르 하라, 네루다, 피아졸라 이러한 단어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멕시코 마리아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공연을 다음의 클럽을 통해서 알게 되어 지하철역에 들으러 가기도 하였다. "그토록 화려하고 열정적인 삼바도 본래에는 가난하고 삶이 힘에 겨운 사람들의 슬픔을 덜고 또 그 고통을 잊고자 하는 몸짓으로부터 나오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한 모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일제 45년이 힘들었겠지만 그 기간에 비교할 수 없는 몇백년을 제국주의와 때론 맞서고 때론 침략당하면서 살아야했던 남미사람들의 슬픔과 한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하고 있다. 안데스 음악의 그 고요하고 명상적인 음악이 때론 힘겹게 버티면서 살아와야했던 그네들의 삶을 달고 있다는것, 탱고의 화려하고 신나는 음악속에 깃들여있는 애절함...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다시금 그들의 전통문화를 발굴해내고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남미의 저력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위에서도 말을 했듯이 민요, 민속문화를 새롭게 발굴해내고 그 시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담아내고자 했던것이 누에바 깐시온 운동이다. 죽어버린 음악, 현실과 유리된 음악이 아니라 그 현실과 맞부딛치면서 성장을 해나갔다. 한때 라틴음악열풍이 불고 했던 것들도 다 이러한 기반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요즘 홍대클럽에서 가야금을 가지고 노래하는 가수를 알게 되고 그 음악을 계속 듣고 있는 중이다. 가야금의 그 애련한 가락이 또 트로트, 탱고와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국악이나 크로스오버 음악에 관심을 가지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교보문고의 음악판매하는 곳을 가보니 생각보다는 국악쪽도 음반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 음악을 듣게 되어서 굳이 위에 누에바 깐시온 운동을 다시금 꺼내게 된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이든 연극이든 설사 다른 나라에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얼마나 우리의 감성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음악을 잘 아는것은 아니지만 젊음과 저항의 음악으로서의 락은 거세가 된채 랩과 힙합이 그냥 댄스음악으로만 되버리는 상황이 참 아쉬웠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꼭 그 형식이 도입된 이유나 사회적 상황을 알아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창작자의 경우에는 어떤 것이든 내용과 형식이 있다고 하면 그 형식만 도입하는것이 아니라 내용도 함께 고민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아뭏든 남미의 음악을 듣다가 가야금으로 된 음악을 들으니 우리네 음악상황을 여러가지 곱씹어보게 된다. 70년대부터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전국에서 탈패등도 많이 생기고 80년대 사회적인 상황과 맞물려서 엄청나게 성장을 했었는데 현재는 그러한 흐름들이 끊긴지 좀 된 것 같다. 90년대부터는 문화의 시대라 할 만큼 경제적인 성장과 함께 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문화산업시장의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을 한대로 무조건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와 함께 얼마나 버무려지고 섞여서 발전을 하고 있을까?? 요즘 한창 뮤지컬이 뜨고있는데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처럼 그냥 수입해오는게 아니라 우리네 감성으로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천만 영화의 시대, 그만큼 여러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영화가 발전을 해왔겠지만 거꾸로 천만명이 같은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시각, 다양한 가치가 함께 공존하면서 발전을 했으면 좋겠다. 음악이, 미술이, 예술이 중상류계층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의 삶과 함께 어우러져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