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올슉업, 공원 산책, 홍대 바다비와 가야금까지(2007.4.23)

ㅇ 뮤지컬 올슉업

토요일 오후에는 간만에 뮤지컬을 보았다. 제목은 올슉업.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누구의 말마따나 최고의 "쇼뮤지컬"이라고 말할만큼 익숙한 노래들, 가지각색으로 변화하는 무대의 장치들, 즐겁고 흥겨운 무용으로 가득차 있다.

뮤지컬 자체에 대한 평은 다른 분들의 글을 참조하는게 도움이 될 듯.

그냥 뮤지컬 자체에 대한 후기라기보다는 뮤지컬을 보면서 들었던 여러가지 다른 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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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그 폭발하는 젊음의 미학 중에서

- 저자 임진모, 발행처 창공사, 1996년 3월 22일


록은 '젊음의 폭발적 저항의 미학'이다. 이러한 정의에는 록과 관련한 네 가지 주요 개념이 들어 있다. 그것은 청춘성, 폭발성, 저항성 그리고 예술성이다. 청춘성은 록이 청년 문화의 음악임을 가리킨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50년대 이전까지 자신들만의 음악을 보유하지 못한채 미국적 환경에 의해 개량된 백인 이주민의 음악인 스탠더드 팝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50년대 초반 로큰롤(록)이 탄생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중략...


폭발성은 청춘성과 직결된다. 로큰롤이 태어나자마자 미국의 온 청춘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것에 청춘의 끓는 피가 삼투되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혈기는 본질적으로 폭발적이고 시끄러을 수 밖에 없다. '로큰롤의 황제' 앨비스 프레슬리의 메이저 레이블 데뷔곡 <상심의 호텔>(Heartbreak hotel 56년)이 담고 있는 사운드는 당시 '혁명적인 소음'이었다. 청춘들은 그것을 좋아했고 또 그것과 궁합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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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보러가기 전에 오래전에 보았던 책을 다시 뒤져보았다. 그렇다고 락음악을 많이 들은것도 아니고 가끔씩 홍대클럽에서 음악을 들을 뿐인데 그래도 그 당시의 배경이 다시금 궁금해 진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한창 뜨던 60년대는 미국에서 반전운동, 평화운동, 다양한 사회운동이 활성화되던 때이고 젊음과 저항의 음악으로서 록이 크게 발전하던 시기이다. 이 책의 평가대로 이야기를 하자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은 폭발성, 청춘성에는 어울릴 듯 하다. 위의 글에서 나오는 스탠더드 팝이란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르겠는데 글로만 판단을 한다면 아주 얌전한 음악이었을 듯 싶다.

그런 환경에서 엉덩이를 들쑥들쑥하고 자유롭게, 시끄럽게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었을 듯 싶다. 한편으로 196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베이비붐세대일 것이고 당시 세계경제가 활황이었기에 구매력을 갖춘 신세대들이 떠오르면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졌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80-9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한창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과 비슷한 식으로. (홍대 인디클럽이 관심을 받은 것도 이쯤이리라)


그렇다고 이런 논리적 이야기로 뮤지컬을 분석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줄거리는 맘에 들지 않았지만 예전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나서 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것처럼.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성을 띈 장르이니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무리가 있을 것이고 또 그와 별개로 어찌되었건 음악, 무용, 춤, 연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르인 뮤지컬이 재미가 없으면 오히려 이상할 듯.


그냥 궁금해서 한국 전통의 음악극 양식이 뭐가 있나 보니 악극, 창극, 최근에 나온 가무극이 있다. (뮤지컬 감상법, 대원사 참고하였음) 이쪽은 잘 모르기에 여기까지. 그렇지만 예전 지하철 1호선을 봤을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다른 나라의 것을 가지고 온다고 하여도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우리의 것, 우리의 감성으로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만큼 개인적으로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지만 다시 또 보고 싶은 뮤지컬이다. 이것은 계속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갔던 김민기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ㅇ 일요일, 산책을 하고 바다비를 가다

일요일, 여러곳에 산책과 번개글을 올렸다. 오후 1시, 미리 이야기를 했던 같은 회사의 직원이 한 명 온다. 댓글 달린 것은 꽤 되건만 연락이 오지 않는다. 야유회 간답시고 계란을 10개 쪄왔는데 할 수 없이 공원 돌아다니다가 둘이서 세개씩 나누어 먹었다. 열심히 땀흘리며 산책하다가 홍대에 4시 반정도 도착하였다. 최근에 칠레의 시인이자 사회활동가였던 네루다(중요한건 아니지만 노벨문학상도 수상)의 글중에서 감동을 받은 것이 있어서 그걸 적으려고 잠시 도서관에 들렸다.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어간다.

그러나 단지 리얼리즘적이기만한 시인 역시 죽어간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뒤에서 이야기를 하겠다.


그래도 댓글 달린 것들이 있어 여러명이 오리라 예상을 하고 같이 갈만한 식당을 찾는데 술집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해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5시 반, 한 명이 오고 간단하게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또 한분이 더 오셨다. 이렇게 해서 총 4명! 떡볶이, 튀김, 순대를 먹고 열심히 산울림소극장 근처의 바다비 클럽으로 갔다. 중간에 모던락과 독립영화를 자주 상영해주는 클럽 빵도 소개해주고.


어두침침하지만 정겨운 분위기비의 바다비! 이날 공연의 주제는 아싸라비아!!!

공연하는 음악인들은 정민아, 고구려밴드, 난 그대와 바다를 가르네, 갤럭시 익스프레스(앨범발매 앵콜공연)

최근 정민아씨 음악을 듣게 되어 바다비도 알게 되고 간 것이었지만 다른 분들 노래도 즐겁고 재밌었다.

정민아씨의 공연에서는 최근 산 앨범에 들어있지 않은 몇개의 노래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그중 은미 이야기라는 노래가 있었다. 게시판의 글에서는 미리 본 내용이었기에 내용은 미리 알고 있었다.

정민아씨는 최근까지 전화상담원을 했었고 은미라는 사람은 뒷자리에 앉았던 동생이라고 한다.

노래는 복잡하지도 않고 단순하지만 내게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고 민아씨는 노래를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물론 그 특유의 털털함으로 다시금 농담을 했지만.


은미 이야기 가사


따르릉 따르릉

그녀의 아버지는 어제 죽었지.


따르릉 따르릉

그녀의 오빠는 술마시고 시비를 걸지.


따르릉 따르릉

그녀의 엄마는 빚을 지고 집을 나갔지.


따르릉 따르릉

오늘도 은미는 전화를 받아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객님.


눈물이 나도 목이 갈라져도 전화를 받아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객님.


따르릉 따르릉



가수의 눈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그 눈물에 내 마음도 슬퍼지는 것이 그들이 느껴야했던 그 괴로움이나 절망감이 남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공연을 가는데 도서관에 가서 글을 베껴적었냐하면 요즘 고민하는 내 생각과 딱 맞아서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이 시인이건 아니면 무명의 어느 작가이건 중요하지는 않다.

네루다의 글에서 "시인"은 시인이 아니라 어떤 예술장르를 넣는다고 하여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사랑시를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우리네 사랑은 항상 단순한 이성적 감성때문에 마음 애린 것 말고도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처럼 때론 다른 외적인 것때문에 그 사랑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다. 이건 실제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시인 네루다는 "순수한 서정시"에 대하여 비판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무조건 현실을 담아낸다고 해서 그것이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옳다고 말해서 세상이 변화되는것이 아니듯 문화나 예술이란 것이 단순하게 특정 이념을 담아내고 그것을 강요하는것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어떠한 것을 담아낸다고 해도 그에 맞는 치열한 예술적인 형상화가 필요할 것이다.


길게 글을 썼는데 어떠한 예술적인 장르든 지금 우리네 삶의 현실을 담아냈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함께 또한 그것을 사람들의 감성에 맞게 바꾸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말을 한 것과는 무관하게 힘든 조건들속에서도 공연장을 지키고 음악을 지키고 사람들과 함께 문화를 즐기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고 계란 한개라도 나누어 먹고 싶다. 야유회간다고 싸갔던 계란중 남았던 거라도 클럽에 두고 올걸 집에 와서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