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패, 나이트 그리고 홍대클럽 사이에서 (2005.3.2)

풍물패, 나이트 그리고 홍대클럽 사이에서

2005. 3. 2 밤에
문태준
http://tunelinux.pe.kr


ㅇ 동아리 가입과 풍물패 생활
대학교에 가자마자 세가지 동아리에 가입을 하였다. 하나는 풍물패, 하나는 여행동아리, 하나는 산악반이었다. 이 세가지의 공통점은?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원래부터 운동과 여행을 좋아하였기에 한꺼번에 가입을 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주로 풍물패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는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때부터 가지고 있던 민족문화나 민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일치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릴때부터 서양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들어온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많았었고 학교 다니면서도 국어사전은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서 영어사전만 가지고 다니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산악반은 북한산 인수봉 암벽등반 갔다와서 좀 무서웠던 것도 있는 듯 하다. (실은 이 한번의 암벽등반을 가지고 10년이 넘게 울궈먹고 있다. 암벽등반 해보았다고)

풍물패 활동을 학기초부터 시작하였고 91년 강경대 열사가 죽었을 때 명지대에서 신촌, 이대를 지나 노제를 할 때에도 사수대 바로 뒤에서 열심히 풍물을 쳤다. 풍물패를 하고나서 그전까지는 풍물의 리듬이 그다지 몸에 다가오지 않고 열심히 남들 따라 하는 기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엄청난 최루탄을 마시던 그날엔 정세와 무관하게 풍물의 가락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처음으로 풍물을 치는 기쁨을 누렸다. 신명이라고 할까?

ㅇ 화려만 불빛아래 앗싸앗싸~
풍물을 치는 것도 즐겁고 기뻤지만 나는 나이트에 가는 것을 무지 좋아했다. 대학교 시험을 치고나서 바로 이대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여기 일하는 형들과 함께 가끔씩 이대나 이태원의 나이트에 가서 밤을 새곤 하였다. 형, 누나들과 함께 노는 것도 재미있었고 춤을 배우는 것도 즐거웠다. 한번은 짝사랑하던 아르바이트하던 누나와 만나 금방 헤어지고 나서 혼자서 나이트를 가기도 하였다. 어찌하다보니(?) 이상하게도 블루스를 무지 좋아했다. 요즘은 나이트에 가도 블루스를 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때만 해도 나이트의 블루스 치는 시간에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왔던 듯 하다. 여자친구랑 둘이서 나이트에 가서 블루스를 치는 것도 무척 좋아했다. 친구들이랑 만나면 내가 나이트를 데리고 가는 편이었다.

ㅇ 민중문화, 생산적인 문화 ,  퇴폐문화, 자본주의문화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원래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풍물패 생활을 하면서 퇴폐문화(?), 자본주의의 상업적인 문화에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이고 민중문화와 민족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이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을 어찌할까. 막걸리 한잔 걸쭉하게 마시고 신나게 풍물을 치며 신명을 느끼는 것도 즐거웠지만 화려한 불빛아래 방방 뜨면서 온몸을 흔들며 나이트에 노는 것도 너무나 즐거웠다.

ㅇ 락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함께 군대에 가다
93년, 94년도에는 민중가요에서도 락이나 랩이 도입된 시기이다. 그전부터인가? 아뭏든 이러한 음악을 들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 아닌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기분은 풍물패를 좋아하면서도 나이트를 좋아하는 그 모순된 감정과 비슷하였다. 그리고 군대에 갔다. 그런데 당연히도 군대에서는 민중가요를 들을 수 없었다. 가끔 고참들이 노래부르라고 하는데 투쟁가는 아니지만 민중가요 노래패 꽃다지의 서정적인 노래를 불러서 분위기를 죽이곤 하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락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민중가요를 통하여 문화적 감수성을 채울 수 없는 상태에서 택한 하나의 돌파구였다.
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책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서구에서 락이라는 것 자체도 지금처럼 갑자기 주류음악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는 젊음과 반항의 음악으로서 출현한 것이라는것, 미국에서 비주류였던 흑인들의 한과 설움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거기에서도 이제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주류의 길로 간 사람들이 있지만 또 거기에 맞서 저항과 자유와 반항을 노래하던 펑크같은 음악들이 있었다. 이때문에 군대에 있을 때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홍대등의 언더그라운드 클럽들이 활동하는 곳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ㅇ 제대, 홍대 클럽에 가다
군에서 제대를 하였고 아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물어 홍대 클럽에 자주 돌아다니게 되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97, 98년도만 하더라도 각 클럽들마다 음악적 색깔이 분명한 것 같았다. 김목경 가수 등 주로 블루스 음악을 많이 하는 곳도 있었고(프리버드) 올드락을 주로 공연하는 곳도 있었고 어디는 메탈음악을 많이 하였다.(롤링스톤즈) 이당시에는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지만 드럭도 가끔 갔는데 주로 펑크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많이 왔었고 이때의 일기장을 보니 노브레인이나 크라잉넛도 있었다. 어떤 곳은 주로 힙합음악을 많이 하였고 여기는 주로 10대 후반들이 많았는데 내가 가면 완전히 노땅이었다.(푸른굴양식장. 우리나라 락에 관심을 가져 우리나라 락 음악을 노래하던 곱창전골이라는 일본 밴드도 생각난다) 힙합을 하는 곳은 진짜로 노래가사에 욕들이 많았다. 10대 후반에 우울한 우리네 학교생활때문이리라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춤추는 클럽도 자주 다녔는데 춤추는 클럽도 클럽마다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었다. 머라고 정확하게는 표현을 못하겠지만.

ㅇ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적 다양성
홍대클럽이 결코 완전한 대안문화라고는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문화적 다양성, 음악의 다양성을 키우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 자본주의사회가 80년대를 경과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하고 과거보다는 경제적인 면에서 여유가 생기는 세대들이 생겨나면서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주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뭏든 춤을 좋아하는데 그전에는 나이트 밖에 없었지만 (위의 라이브 클럽말고) 춤추고 음악듣는 클럽들이 많이 생기면서 주류가 아닌 비주류적인 음악과 문화를 접한다고 스스로 정당화를 할 수 있었다.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지만.

ㅇ 문득 문득 떠오르는 단편적인 생각들
글이 거의 끝나가는데 정확히 어떻게 정리하는게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몇가지 단편적인 생각들이 떠오른다. 한 사회안에서 살아가면서 주류의 문화가 있지만 다양성과 비주류의 문화가 존중받고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풍물패와 나이트를 같이 좋아한다는게 나한테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순이 한 개인을 통하여 함께 드러난다는 것. 무조건 현재의 문화가 잘못되었다라고만 말하거나 투쟁의 문화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기존의 주류의 문화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문화에 대한 비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대안문화, 노동자 계급의 감수성을 담아낼 수 있는 민중문화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이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조만간 홍대클럽에 가서 락음악 열심히 듣고 노는 클럽에 가서 한번 신나게 뛰어놀아보아야겠다. 놀때는 다른 생각은 잊고 미친듯이!!!